나를 보기 위한 새 눈 만들기
정ㅇㅇ
나이가 들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뇌세포가 죽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안이 와서 그런 것일까. 나이가 들어 말이 많아지고 오지랖이 넓어지는 건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흐릿해지면서 눈을 멀리 들어 남을 보기 때문일까. 나이가 많으면 더욱 공손해지고 싶고, 마음이 더 넓어지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우린 나이로 밀어 붙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생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낯은 두꺼워지고 부끄러움도 멀어지고, 거침없어지는 거 보면 연륜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더구나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노인'이라면 얼마나 대단한가. 그 동방예의지국 젊은이들에게 어깨를 무겁게 하는 게 바로 '어른' 또는 '노인'이 아니던가. 이제 나는 50대 중반, 어른도 아니고 노인도 아니지만 난 노년을 준비 중이다. 말많고 오지랖 넓은 그어른이나 노인이 되어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백내장과 노안수술을 택했다. 렌즈를 삽입하여 시력을 교정한다하니 적응 기간이 끝나면 남을 보기보다는 나를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오지랖으로 가득한 내가 아닌, 시야를 가까이 더 가까이 해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며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을 늘려 가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들면 아름다운 은퇴를 하고 싶어 한다. 열심히 일을 했으니 해외여행을 꿈꾸고 크루즈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내 노년은 안으로 안으로 잦아들기를 원한다. 행보를 줄이고 말을 줄이고 만남을 줄이고...그렇게 점점 내안으로 잦아들어서 평화롭고 고요하게 늙어가고 싶다. 종일 부처님 놀이하듯 명상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종일 글을 쓰거나, 종일 그림을 그리는 일, 그렇게 나를 위한 시간 속에서 살고싶다. 그래서 수술을 결정했다. 이미 명성을 들어 알고 있던 사랑가득안과의원. 우리동네라서 마음이 더편안했다. 갖가지 검사를 마치고 수술 날짜를 잡기까지 그설렘이 나를 긴장시키면서도 기대로 들뜨게 했다. 친절한 상담과 편안한 분위기 때문인지 병원에 가면 걱정과 불안이 스물스물 사라졌다. 대학병원급 의료장비를 갖췄다고 하니 더 신뢰가 갔다. 서울에 유명 병원을 찾는다거나, 시내 중심가에 대형병원을 찾지 않았던 건 참 잘 한 일이었다. 자주 병원에 들러야 하는데 멀리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했더라면 그 불편함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두고 두고 생각해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우편함에 책이 꽂혀도 그다지 반갑지 않는 건 돋보기를 쓰고 읽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안경과 친하지 않아서 돋보기를 쓰면 두통이 와서 오래 쓰고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내가 화가라는 점이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시야가 흐릿해지고, 캔버스에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안보인다는 사실이다. 돋보기를 쓰고 작업 한다는 것은 쓰지 않는 것 보다 더 불편하다. 그렇다고 대충 색을 섞고, 대충 감으로 그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노안은 심해지고, 심해진 만큼 생활은 불편해져갔다. 수술을 하겠다고 하니 겁 많은 그이는 '삼성의 이재용이 안경 쓰고 다니는 이유가 뭐겠어?' 하며 눈 수술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피력했다. 그 말을 들으니 슬슬 겁이나기도 했다. 신체에서 눈의 중요성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 눈에 칼을 댄다는 것도 신중해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내 노년을 내 일에 빠져 고요하게 보내고 싶다. 그래서 먼저 수술을 한 친구들과 선배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하나같이 만족감이 컸고, 적극 권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환한 세상을 빨리 맞이하자"라는 두근거림을 가지고 과감하게 수술을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용감하게 수술을 하고 안대를 떼는 순간, 한쪽이 환해서 마치 미세먼지를 걷어낸 기분이었고, 지리산 어느 능선에서 맑은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두 눈 모두 수술을 끝내고 지금은 맑은 기분으로 적응 중이다. 날마다 안약을 꼬박꼬박 챙겨 넣으면서. 이제 나는 나를 맑은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맑게 세상을 보며 맑게 웃고, 맑은 사람들을 보며 맑게 사랑해야겠다.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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